오늘은 저희 아빠 이야기를 좀 할까 해요. 제목대로 애증의 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오늘 포스팅 주제인데요. 아빠가 어떤 분이신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일화를 예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어요. 그 걸 먼저 읽어보시고 오셔도 좋을 것 같아서 링크 걸어 둘게요. 이 일화 말고도 고집쟁이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하자면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요. 오늘은 밤 관련된 것만 할게요.
저희 아빠는 70대 평범한 아버님, 어머님들처럼 산에서 밤 줍는 걸 좋아하세요. 산에서 밤, 도토리 줍는 거 어르신들 많이 하시잖아요. 거기까지는 괜찮아요. 저도 밤을 좋아하기도 하니까요. (다만 제가 소화가 안 돼서 밤을 많이 못 먹어요.)
그런데 제가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뭔가 싸주시려는 그 마음은 알겠어요. 그런데 산에서 주운 작은 밤들을 너무 많이 싸주시는 거예요. 아빠는 조금만 먹어도 된다고 하시면서 자신은 1/5을 가져가시고 저한테 4/5를 주셔서 너무 많다고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려도 밥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고 한사코 고집을 꺾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 같이 살고 있던 사람이 밤을 안 먹기 때문에 밤밥을 하려면 내 밥을 따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그걸 설명드려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더군다나 제가 소화 문제로 워낙 조금씩만 먹기 때문에 가끔 주시는 밤도 감당이 되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밤에서 벌레가 나오면 기겁을 했고 먹을 때마다 밤에 또 벌레가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됐어요. 껍질은 또 왜 이렇게 안 까지는 지요. 30분 넘게 까다 보니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제가 손가락 힘도 약해요.ㅜ.ㅜ)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한 번 용기를 내서 작은 밤 말고 큰 밤만 받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예 안 받겠다고 하려다가 밤 줍는 거 좋아하시는데 그 재미가 저 때문에 반감될까 싶어서 생각 끝에 좀 사이즈가 큰 밤만 주우면 안 되냐고 말씀을 드린 거예요. 다행히 알겠다고 하셨어요. 그 이후부터는 큰 밤을 역시나 많이 주셨답니다. 집에 가져와서 큰 밤을 삶아서 먹다가 역시나 소화가 안 돼서 많이 못 먹고 결국 1/3은 버렸던 기억이 나요. 제가 음식 버리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다 못 먹겠는 거예요. 그렇게 밤은 저한테 잊을 만하면 또 생기고 잊을만하면 또 생기고를 반복하는 애증의 골칫덩이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 일이 터집니다. 이게 밤 하나의 문제면 이렇게 짜증이 나지 않아요.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결국 밤에서 터지더라고요. 그날도 아빠가 산에 갔다가 심심해서 밤을 주워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크기가 작기는 한데 맛은 있으니까 가져가서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큰 밤만 받겠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계셨던 아빠는 제 눈치를 보면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ㅜ.ㅜ. 포스팅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네요.
검은 봉지에 쌓여있던 밤을 얼핏 봤는데 크기가 너무 작은 거예요. 이걸 다 가져가서 까다가는 제가 진짜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빠 나 이거 다 못 가져가. 작아서 까기 힘들어.라고 말씀드렸더니 시장에 밤 껍데기 까주는 가게가 있다고 가는 길에 들러서 밤을 까주시겠다는 거예요. 결국 밤을 집에 가져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밤 크기가 작고 일정치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벗겨진 밤보다 밤 껍데기가 일부 남아있는 밤들이 대부분이었고 결국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집에서 밤을 까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껍질이 잘 까질 줄 알았는데 밤이 말랐는지 껍질이 밤 속살에 다 붙어서 칼로 벗겨지지가 않는 거예요. 와... 그 작은 밤을 잡고 칼로 벗겨보려 애를 쓰는데 잘 안되니까 화가 났어요. ㅜ.ㅜ
받아 온 밤 중에서 2/3은 엄마가 거의 다 까고 저는 노안으로 눈이 안 좋은 엄마가 까놓은 밤에 혹시 벌레가 있나 검수작업과 동시에 밤을 몇 개 까다가 결국 1/3은 버렸어요. 그랬음에도 엄마가 손목이 아프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나서 고민 끝에 아빠한테 카톡을 보냈어요. 앞으로는 밤을 아예 받지 않겠다고요. ㅜ.ㅜ
아빠는 아무 답도 안 하셨어요. 항상 그랬어요. 제가 요즘 이런 류의 카톡을 보내면 답장을 안 하시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카톡을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밤을 냄비에 쪘어요.
근데요. 밤이 너무 맛있는 거예요. 큰 밤보다 작은 밤이 정말 맛은 있었어요. (참고로 위에 핫케잌도 밤 넣고 만든 거예요.) 간식으로 밤을 먹으면서 아빠 생각이 또 나고 미안함 마음과 이젠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만 참아도 된다는 여러 감정들이 부딪치면서 눈물이 났어요. ㅜ.ㅜ
지금 포스팅을 하면서도 눈물이 나네요.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부턴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물론 예전보다 아빠가 많이 달라지신 건 알겠어요. 그래서 저도 아빠에 대한 마음이 좀 풀리다가도 밤 이야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다시 마음을 닫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나중에 아빠를 생각하면 후회하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노력중이에요. 아빠랑 나 둘다 행복한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래보면서 애증의 밤. 결국은 아빠이야기였던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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